2023. 3. 23. 16:40ㆍ문학역사
윤봉길은 시인이면서 교육자요 저술가이다.
그가 남긴 시문집 명추(鳴椎), 임추(壬椎), 옥타(玉唾)등이 있다.
윤봉길과 계몽운동
윤봉길의 일화 중 무지한 조선인 이야기가 있다.
윤봉길이 19세때 이야기이다. 때는 1926년이었고, 윤봉길은 공동묘지에서 선친의 무덤을 찾는 청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청년은 무돔에 꽂힌 모표를 손에 들고 있었으며 글을 몰라 무덤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27년 윤봉길은 무지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나이 20세였고 농민독본, 3권을 저술하였으며 이때부터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윤봉길은 11세의 나이에 일본인 교사 밑에서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신념이 확실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일본인 교사가 수업 중에 일본어로 "나는 일본인입니다"라는 말을 해보라고 하였는데, 아무도 따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앉은 친구가 손을 들고 그 말을 따라한 것이다. 이에 어린 윤봉길은 분노하여 그 친구를 따로 불러 죽을 만큼 때리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왜놈이 된 기분이 어떤가"라고 말을 하였다.
윤봉길의 죽음
교과서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윤봉길은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에 항거하는 의거를 했다.
폭탄은 그동안 도시락 폭탄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물통에 화약을 가득 채운 물통 폭탄이었다.
이 의거로인하여
- 일본 육군대장 시라가와 24개 파편을 맞아 사망
- 제9사단장 육군 총장 우에다 다리 절단
-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시력 상실
- 주중공사 시게미쓰 다리 부러짐
- 카와바다는 창자가 끊어져 즉사
- 주중총영사 무라이, 민단 간부 도모노 중상
의 피해를 입혔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 장개석(총통)은 "중국군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라고 감격했다.
당시 중국의 인구는 약 4억명이었고 조선은 3천만이었다.
이 사건으로 1932년 12월19일 일본 가나자와육군형무소에서 십자틀에 묶여 총살당한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5세였다. 슬하에 1여 2남의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났다
고문을 받을때도 윤봉길은 "일본을 타도하려 상해에 왔다"라는 말을 했으며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일본의 만행
일본의 가나가와시에는 윤봉길의 추모비가 있다.
윤봉길 의사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인사 스즈키 노부유키가 추모비에 말뚝을 박고 윤봉길은 테러리스트라는 글을 남긴다.
'문학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순원의 막걸리 수업 (0) | 2023.04.07 |
|---|---|
| 한글이 위대한 이유 (0) | 2023.04.04 |
| 매국 문학인 중에서 유일하게 반성한 채만식 (0) | 2023.03.15 |
| 애국 시인 심훈의 집안은 친일파 그리고 영화 (0) | 2023.03.13 |
| 만해 한용운의 원칙과 낙 (0) | 202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