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역사(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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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한국사랑
펄벅은 누구? 펄벅은 3살에 미국에서 중국으로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3살이면 너무 어려서 미국 생활도 기억이 나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이라는 동양에서 사양인으로의 삶을 살았다. 어머니 캐리의 권유로 18세에 미국 랜톨프 메이컨 여대에 진학할 때까지 중국에서 자랐다. 물론 대학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와야 했다. 그리고 3년 후 결혼했는데 남편이 미국인 로싱 벅(Lossing Buck)이었다, 그래서 펄의 이름이 벅이라는 성이 붙는다, 남편은 아버지처럼 선교활동에 전념하였고, 그 때문에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 그래서 펄벅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이런 남편의 무관심은 펄벅이 글을 쓰는 시초를 제공하였다. 펄은 글을 쓰면서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나중에 대지라는 ..
2023.04.19 -
황순원의 막걸리 수업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학창 시절에 소나기를 읽고 소녀와 소년의 사랑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소나기가 1953년 11월에 "협동"에 발표된 소녀라는 연구결과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소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나기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황순원의 아버지 황찬영은 3.1 운동때 태극기를 나눠주다 옥살이를 하였다. 황순원이 5살이 되던 해였다. 그 일로 황순원의 어머니가 밭일을 하며 황순원을 키웠다. 1942년에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이 가속화 되자 평양으로 낙향하여 1945년 해방 때까지 어떠한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80년까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황순원의 수업은 한달에 한번 막걸릿집에서 했는데 이를 두고 막걸..
2023.04.07 -
한글이 위대한 이유
과학적인 문자 전 세계의 문자 중에 한글만이 창제원리와 과정이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이다. 한글은 글자의 표현이 입모양 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발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과학적인 문자이다. 저 세계언어는 약 7,000여 언어가 존재하고 문자는 약 30여 개가 존재하는데, 그중 한글이 포함되어 있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하여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었는데,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창호상형설"이 한글의 유력한 설이었다. 즉, 문창호지에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어짐에 따라서 정확한 한글의 원리와 창제 과정이 문헌으로 남을 수 있던 것이다. 만약 발견되지 않았다면 한글의 원리와 창제과정은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
2023.04.04 -
윤봉길의 성격과 관련된 일화
윤봉길은 시인이면서 교육자요 저술가이다. 그가 남긴 시문집 명추(鳴椎), 임추(壬椎), 옥타(玉唾)등이 있다. 윤봉길과 계몽운동 윤봉길의 일화 중 무지한 조선인 이야기가 있다. 윤봉길이 19세때 이야기이다. 때는 1926년이었고, 윤봉길은 공동묘지에서 선친의 무덤을 찾는 청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청년은 무돔에 꽂힌 모표를 손에 들고 있었으며 글을 몰라 무덤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27년 윤봉길은 무지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나이 20세였고 농민독본, 3권을 저술하였으며 이때부터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윤봉길은 11세의 나이에 일본인 교사 밑에서 조선인이 일본어를 배운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신념이 확실했던 것 같다. ..
2023.03.23 -
매국 문학인 중에서 유일하게 반성한 채만식
채만식의 매국 "그러하여야만 조선 사람으로서의 '닛본징(일본인)'인 도리를 다함이려니와 동시에 '닛본징'으로서의 조선 사람이 진정한 행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글은 1942년 매일신보에 실렸던 "아름다운 새벽"의 일부분이다. 채만식은 소설을 통해서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본군 입대를 장려하고 이 행위를 정당화한 하였다. 광복 후 채만식 채만식이 조선이 일제치하에서 독립하고 광복을 맞이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그는 광복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당시 친일파 문학인 들은 광복 후에 친일의 행적들을 부인하거나 어쩔 수 없이 강압에 의해서 한 일이라고 핑계를 대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채만식의 경우는 소설 1948년 "민족의 죄인"을 출간하고 과거 자신의 행적을 반성한다. 채만식..
2023.03.15 -
애국 시인 심훈의 집안은 친일파 그리고 영화
본명은 심대섭이다 그는 매우 잘생겼고 성격이 밝았으며 언행도 거침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글 쓰는 속도가 무지 빨랐으며 "직녀성"은 한 달, "상록수"는 약 두어 달만에 탈고했다고 한다. 심훈의 집안은 친일파 심훈은 집안과 다른 행보를 걸었다. 심훈의 두 형은 친일파였고 집안은 양반 가문의 중산지주 계급으로 친일가문이었다. 또한 그의 첫번째 아내는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누이 이혜영이었다. 유명한 일화중에 그가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당시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을 비하하고 모욕하자 수학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낙제하여 유급되었지만 그는 후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심훈은 4학년이 되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되며 3월 5일 남대문 학생시위로 ..
20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