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막걸리 수업

2023. 4. 7. 11:19문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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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린 소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학창 시절에 소나기를 읽고 소녀와 소년의 사랑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소나기가 1953년 11월에  "협동"에 발표된 소녀라는 연구결과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소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나기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황순원과 처
황순원과 처


황순원의 아버지 황찬영은 3.1 운동때 태극기를 나눠주다 옥살이를 하였다. 황순원이 5살이 되던 해였다.
그 일로 황순원의 어머니가 밭일을 하며 황순원을 키웠다.
1942년에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이 가속화 되자 평양으로 낙향하여 1945년 해방 때까지 어떠한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80년까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황순원의 수업은 한달에 한번 막걸릿집에서 했는데 이를 두고 막걸리 강의라고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술을 많이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담배는 근심을 없애고 피곤을 없애며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고 하여 상당한 골초였다.


 

강인한 성격


황순원은 생전에 언론에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본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머릿말, 후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보통은 작가 사후에 친필 원본을 찾아내어 학자들이 해석도 하고 평도 내고 하는데
황순원의 성격이 워낙 깔끔하신분이라 이러한 원고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부분은 상당히 후학들에게 안따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순원은 신문사의 신춘문예도 심사를 하였는데 심사 당시에 수상작에 해당하는 작품이 제자의 작품이었기에 차석으로 내렸다고 한다. 이 제자가 유명한 "빙벽"의 작가 고원정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황순원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지만 본인이 수여를 거부하였다.
그는 소설가로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경희대학교에서도 문학박사 학위도 거부하였다

1978년 영화 소나기의 한장면
1978년 영화 소나기의 한장면

 

 

사망


2000년 9월14일 사망한다. 
9월 13일 태풍이 북상을 하는데 미열이 있던 황순원은 해열제를 복용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나이 85세였다.
장례식장은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되었으며 5일장을 치르는 동안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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