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2. 22:40ㆍ문학역사
한용운은 1919년 3.1 운동을 할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며 독립선언서에 선언을 하고 스스로 체포된다.
그로 인해 3년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참고로 한용운은 세조 때 한명회의 동생 한명진이 후손이다
옥중에 한용운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변호사를 쓰지 말 것,
사식을 취하지 말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것,
이 세 가지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으며 얼마나 강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출소하고 민족의식을 계몽하고자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게 되는데, 이로써 저항 문학에 앞장서고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한다.
한용운의 성격
한용운은 별절한 친일인사는 상대를 하지 않았는데,
일화 중에 3.1 운동을 같이 했던 최린이라는 자가 3.1운동 이후에 변절자가 되어 친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최린이 한용운을 만나러 왔었다.
끝내 만나주지 않자 최린은 그의 딸에게 돈을 주고 돌아갔었는데, 나중에 이 일을 안 한용운이 딸에게 호통을 치고 최린의 집으로 가서 돈을 집어던지고 다시 돌아온 적이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 마포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동지 김동삼에게는 그의 시인을 모시고 와 5일장을 치러주기도 하였다,
즉, 변절자에게는 상당히 냉정하였으며, 애국자에게는 관대하였다고 하다.
한용운의 즐거움
한용운은 해수욕을 즐겼다. 지친 몸과 피로를 해수욕으로 풀었다고 하는데, 해인사 순례길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해운대에 들렀다고 한다.
1941년 8월에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원산 갈마역에 내려 명사십리와 송도원을 도가며 해수욕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일화로 한용운은 게장을 무지 좋아했다. 밥상에는 항상 게장이 있었으며 술도 좋아해서 항상 아내가 술을 담가 놓았다.

한용운의 죽음
한용운은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사망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사인은 뇌졸중이며 나중에 전해지는 소문에 의하면 사망 후에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고, 혈색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용운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사흘이 지나서야 화장을 했다고 한다.
묘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매장을 했다.
한용운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육사도 그해 사망을 했고 윤동주는 그다음 해인 1945년 사망을 했다.
이 비운의 민족시인들은 광복을 눈앞에 두고 정작 사망을 했으니 얼마나 비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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