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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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막걸리 수업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학창 시절에 소나기를 읽고 소녀와 소년의 사랑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소나기가 1953년 11월에 "협동"에 발표된 소녀라는 연구결과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소녀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나기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황순원의 아버지 황찬영은 3.1 운동때 태극기를 나눠주다 옥살이를 하였다. 황순원이 5살이 되던 해였다. 그 일로 황순원의 어머니가 밭일을 하며 황순원을 키웠다. 1942년에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이 가속화 되자 평양으로 낙향하여 1945년 해방 때까지 어떠한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80년까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황순원의 수업은 한달에 한번 막걸릿집에서 했는데 이를 두고 막걸..
2023.04.07 -
시인 김소월의 사랑과 고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인 김소월. 본명은 김정식이며 소월(素月)은 흰 달이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죽음 1904년 김소월의 아버지는 친척집에 음식을 가지고 가던 길이었다. 말을 타고 가던 중 일본인 목도꾼(나무나 끈으로 짐을 묶어 두 사람 이상이 나르는 일)들이 아버지의 음식을 갈취하고자 김소월의 아버지를 구타하는 일이 발생한다. 구타당한 아버지는 심한 외상을 격은 후의 나타나는 불안장애가 타나났고, 그 일로 음식을 먹지 않거나 말을 하지 않는 등, 방에 틀어박혀 아사하게 된다. 결국 이런 아버지의 사망이 김소월에게는 말 할 수 없는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김소월의 정신적 영향 계희영은 김소월의 숙모이다. 김소월 아버지의 사망 후,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숙부는 사업차 자..
2023.03.10 -
시인 윤동주의 짝사랑 그리고 죽음
윤동주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라는 것인데 좀 더 윤동주를 알고 싶었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에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저항시인으로 유명하다. 2010년에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이 공개되었는데, 그중 그의 어록을 하나 살펴보면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일본의 회유 1930년에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회유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 많은 조선 문인들이 그 회유책에 넘어가서 절필, 변절등이 만연했는데, 윤동주는 이러한 회유에도 불구하고 민족 시인으로써의 이름을 지켜 갈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회유책에 뜻을 굽히지 않은 시인 중에는 이육사도 있다. 윤동주는 형제가 총 7남매였고 그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실 윤동주..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