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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원칙과 낙
한용운은 1919년 3.1 운동을 할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며 독립선언서에 선언을 하고 스스로 체포된다. 그로 인해 3년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참고로 한용운은 세조 때 한명회의 동생 한명진이 후손이다 옥중에 한용운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변호사를 쓰지 말 것, 사식을 취하지 말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것, 이 세 가지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으며 얼마나 강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출소하고 민족의식을 계몽하고자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게 되는데, 이로써 저항 문학에 앞장서고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한다. 한용운의 성격 한용운은 별절한 친일인사는 상대를 하지 않았는데, 일화 중에 3.1 운동을 같이 했던 최린이라는 자가 3.1운동 이후에 변절자가 되어 친일을 하게 ..
2023.03.12 -
시인 김소월의 사랑과 고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인 김소월. 본명은 김정식이며 소월(素月)은 흰 달이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죽음 1904년 김소월의 아버지는 친척집에 음식을 가지고 가던 길이었다. 말을 타고 가던 중 일본인 목도꾼(나무나 끈으로 짐을 묶어 두 사람 이상이 나르는 일)들이 아버지의 음식을 갈취하고자 김소월의 아버지를 구타하는 일이 발생한다. 구타당한 아버지는 심한 외상을 격은 후의 나타나는 불안장애가 타나났고, 그 일로 음식을 먹지 않거나 말을 하지 않는 등, 방에 틀어박혀 아사하게 된다. 결국 이런 아버지의 사망이 김소월에게는 말 할 수 없는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김소월의 정신적 영향 계희영은 김소월의 숙모이다. 김소월 아버지의 사망 후,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숙부는 사업차 자..
2023.03.10 -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분노
민족저항시인 이육사 이육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청포도", "광야", "꽃"등이 있는데,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접해봤을 듯하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 이육사로 잘 알려진 민족저항시인 이원록은 1927년 10월 일제수탈의 원형인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 의거의 배후로 지목되어 수감되는데 그 당시 수감번호가 264번이다. 그리고 이육사의 다른 뜻으로 죽을 육의 역사사를 사용해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뜻도 있다. 이육사는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3년의 형을 치렀다. 2년 후인 1929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의 실제 인물인 장진홍이 일본에서 체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이육사는 감옥에서 나올수 있었다. 출옥 후에 약 10년을 중외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를 하게 되는데 193..
2023.03.09 -
시인 윤동주의 짝사랑 그리고 죽음
윤동주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라는 것인데 좀 더 윤동주를 알고 싶었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에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저항시인으로 유명하다. 2010년에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이 공개되었는데, 그중 그의 어록을 하나 살펴보면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일본의 회유 1930년에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회유책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 많은 조선 문인들이 그 회유책에 넘어가서 절필, 변절등이 만연했는데, 윤동주는 이러한 회유에도 불구하고 민족 시인으로써의 이름을 지켜 갈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회유책에 뜻을 굽히지 않은 시인 중에는 이육사도 있다. 윤동주는 형제가 총 7남매였고 그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실 윤동주..
2023.03.08